이어령, 그에게 어머니는 영원히 읽지 못하는 책이라고 한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이후에 두번째로 읽은 그의 책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다양한 언어의 은유로 풀이 되고 있다.
특별히 '책, 나들이, 뒤주, 금계랍, 귤, 바다' 이라는 여섯가지 은유로 쓰여진 글들에는 연륜에서 나오는 절제 된 아름다운이 느껴진다.
마지막 부분에 그가 독자들과 세상에게 하는 말은,
'감사'하라는 것.
하루하루를 단순한 일상을 모두 감사합시다.
세상의 모든 현상들,
해가 뜨고 지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눈이 오고...
그 모든것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것 감사합니다.
- 본문 중에서...
나의 서재에는 수천수만 권의 책이 꽂혀 있다. 그러나 언제나 나에게 있어 진짜 책은 딱 한 권이다. 이 한 권의 책, 원형의 책, 영원히 다 읽지 못하는 책 그것이 나의 어머니이다. 그것은 비유로서의 책이 아니다. 실제로 활자가 찍히고 손에 들어 펴볼 수도 있고 읽고 나면 책꽂이에 꽂아 둘 수도 있는 그런 책이다. 나는 글자를 알기 전에 먼저 책을 알았다. 어머니는 내가 잠들기 전 늘 머리맡에서 책을 읽고 계셨고 어느 책들은 소리 내어 읽어주시기도 했다. 특히 감기에 걸려 신열이 높아지는 그런 시간에 어머니는 소설책을 읽어주신다. 암굴왕, 무쇠탈, 장발장, 그리고 이제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나는 아련한 한약 냄새 속에서 들었다. 겨울에는 지붕 위를 지나가는 밤바람소리를 들으며 여름에는 장맛비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머니의 하얀 손과 하얀 책의 세계를 방문한다.
아, 이마를 짚는 손. 장갑을 벗은 맨손. 그것은 타인의 손이면서도 이미 타인의 것이 아니다. 대체 머리맡에 앉아 이마를 짚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이마에 와 닿는 그 손은, 어머니가 아내의 그 손은, 아니 그 건강한 손들은 나의 감기를 대신 앓아줄 수는 없는 멀고 먼 이방인과 다름없는 손들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몸에서는 차가운 바깥 공기가 풍겨 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들은 내 곁에 있지 않고 건강한 생활의 이야기들을 주고받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손이 이마에 닿을 때 거리에서 나는 내 스스로의 열을 느낀다. 어렴풋한 황혼의 빛 속에서 어둠과 밝음을 나눌 줄 알고 5월의 바람 속에서 사라져가는 봄과 다가오는 여름의 의미를 분간할 줄 아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마 짚는 그 손과 나 자신의 한계를 뚜렷하게 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손들이 줄곧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다.
솟아오르는 아침 해보다 장엄하고 드라마틱한 게 있나요? 타오르는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르면 천지창조 첫째 날처럼 구름장 뚫고 빛이 가득한데 그 이상의 드라마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저건 어제 뜬 해고 내일도 또 뜰 거야, 그러면 신기할 게 없겠죠. 하지만 내일 죽을 사람이 마지막으로 해를 본다고 해보세요.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울까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죽음을 느끼지 않는 삶은 허깨비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는 이 순간이 오지 않는다, 시간은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그 한 번뿐인 시간이 지금이다, 라고 생각하면 누가 적당히 살겠습니까. 온몸으로 투신할 것입니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면 성스럽고 순결하게 살리라고 봅니다. 태양이 새롭게 떠오르는 이 길을 두 번 다시 걸을 수 있을까? 그런 마음으로 한번 걸어보세요. 풀 한 포기, 흙 한 줌, 벌레 한 마리도 얼마나 아름답고 눈물겹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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