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하지만 장애라는 것이 인생의 걸림돌, 그야말로 장애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 나에게 장애는 축복이었다. 나는 단순히 장애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장애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보이지 않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책으로 쓸 수 있었다. 장애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장애를 통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유엔과 백악관을 무대로 종횡무진 활동할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열 명 중 한 명은 장애인이고, 65세 이상 노인 두 명 중 한 명이 장애인이다. 사회의 고령화와 빠른 산업 발달로 사고, 재해로 인한 장애 인구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니, 이제 더 이상 장애는 남의 일이 아니다. 장애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으며, 그것은 저주가 아닌 축복이 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싶어, 늦은 밤 이렇게 끊임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나의 삶이 여러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이 그렇게 바뀌어 간다면 온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이 곧 오지 않겠는가? 오늘도 나는 그러한 바람을 간직한 채 책을 쓰며 나의 소중한 또 하루의 시간을 보낸다. - 프롤로그에서
강영우박사님의
내눈에는 희망만 보였다.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박사, 교수를 거쳐
백악관차관보, 세계 장애위원회 부의장, 루즈벨트 재단 고문등으로 일하신 그분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되었고
지난 겨울 췌장암 선고를 받으시고 치료도 안받으시고 생의 마지막을 준비한다는 소식에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책속에서 그 이유를 알수 있었다.
난 나를 사랑하며 염려해 주시는 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가족들도 처음에는 나에게 치료를 권유했다. ‘아직 포기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하지만 난 생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지금껏 축복받은 삶을 살아왔다. 나의 장애는 저주가 아닌, 하나님께서 나에게 내려 주신 축복이었다. 지난 50여 년을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선물을 통해, 감히 꿈꿀 용기조차 내지 못했던 일들을 나는 해냈다. 한국인 시각장애인 최초의 박사가, 교수가 되었다. 작가가 되었고, 영화와 드라마의 실제 주인공이 되었다. 오대양 육대주 안 다닌 곳 없이 세상 구석구석을 누비며 간증을 하고, 집회를 이끌고, 연설을 했다. 22개국의 국가 정상들을 만났다. 장애를 가진 내가 비장애인들을 위해 봉사 했다. 남들이 100살 살아도 못할 일들을 나는 하루가 일주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살면서 해냈다. 그렇다. 그래서 난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벌써 내가 하고자 하는 목표를 다 이루었다.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덤’의 시간이 좀 줄어들었다고 하나님께 앙탈 부릴 것도 아니요, 덤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겠다고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었으니, 마지막도 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한 것뿐이다.
장애를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분의 고백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그분의 믿음을 본 받고,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내가 되길 기도한다.
고린도후서 12:7 ~10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댓글